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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by 천왕지짐 2023. 5. 25.
오래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었다. 빨간색으로 밑줄쳤던 부분을 나열해 봤는데 한참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한 글귀들이 참 많다. 그리고 어쩌다 히비스커스 차를 마실 때면 이 책이 생각난다. 중간중간에 히비스커스 화분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모리 선생님은 매주 수요일 밤, 하버드 스퀘어에 있는 교회에서 열리는 ‘무료 댄스 파티’에 갔다. 

 

샬럿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과연 우리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은 것일까?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하나? 치료비는 또 어떻게 충당하고?
한편 모리 선생님은 아무 일 없는 듯 잘 돌아가는 주변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세상이 멈춰져야 되는 게 아닌가? 저 사람들은 내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나 있을까?
하지만 세상은 멈추지 않았으며, 아무 일 없는 듯 잘도 돌아갔다. 

 

그는 지팡이를 사야 했다. 그것으로 당신 발로 걷는 일은 끝이었다.

 

어면 전 이번 학기 강의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걱정된다면, 교과목을 변경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선 미소지었다.
이렇게 해서 그에 대한 비밀들은 모두 밝혀졌다.

 

시한부 생명이라는 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나오던 그날, 그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쓸 것인가?

 

그는‘죽어간다’는 말이 ‘쓸모없다’란 말과 동의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난 이렇게 말해요. “난 살고 싶다.”
“그렇군요.”
“지금까지는 잘해올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잘할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잘해 나갈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마지막 강의는 이미 시작되었다.

 

80년대가 흘러갔다. 그리고 90년대도 흘러가고 있다. 그 사이 죽음과 징병, 비만, 머리가 벗겨지는 일들이 일어났다. 또 많은 꿈들을 두둑해진 월급 봉투와 맞바궈버렸다. 그러면서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절대로 돈 때문에 일하진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시절이 있었는데. 평화 봉사단에 가입하겠다고,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곳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는데….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우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구. 그러니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는 말게. 그것보단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네. 그래서 그들은 나보다 휠씬 더 불행해.

 

“상반됨의 긴장이요?”
“인생은 밀고당김의 연속이네. 자넨 이것이 되고 싶지만, 다른 것을 해야만 하지. 이런 건이 자네 마음을 상하게 하지만,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넨 너무나 잘 알아. 또 어떤 것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네. 그걸 당연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야.”

 

그에게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묘하게 선생님이 보내는 질 높은 시간들이 부러웠다. 우리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할까? 미국에서는 O.J. 심슨의 재판으로 더들썩했고, 사람들은 점심 시간 전부를 재판을 지켜보는 데다 써버렸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보지 못한 부분은 밤에 집에서 보려고 녹화해두곤 했다. 그들은 O.J. 심슨과 아는 사이가 이니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다들 몇 날, 며칠, 몇 주일을 다른 사람들의 드라마에 빠져 살았다.

 

독자에게 내 칼럼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 없이도 세상은 잘도 돌아간다는 사실에 난 그만 경악해버렸다.

 

“내 몸이 천천히 시들어가다가 흙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끔직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갖게 되니 한편으로는 멋진 일이기도 해.”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때, 느껴지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네.”

 

“그런데 젊은이들은 이런 비참함을 겪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둔하기까지 하지. 인생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하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데 누가 매일 살아가고 싶겠나? 이 향수를 사면 아름다워진다거나 이 청바지를 사면 섹시해진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조작해대는데 바보같이 그걸 믿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어디 있어.”
“늙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으셨어요?”
“미치, 난 나이 드는 것을 껴안는다네.”

“껴안아요?”
“아주 간단해.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우지. 22살에 머물러 있다면, 언제나 22살만큼 무지할 거야. 나이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성취감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 말야.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 앞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아마 65살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을걸.”

 

우리는 엉뚱한데 가치를 두지.

 

선생님은 늘 노래와 웃음, 춤 같은 소박한 즐거움에 도취되는 분이었다.

 

이 사람들은 사랑에 너무 굶주려서 그 대용품을 받아들이고 있구나. 저들은 물질을 껴안으면서 일종의 포옹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 될 리가 있나. 물질이 사랑이나 용서, 다정함, 동료애 같은 것을 대신할 수는 없는데….”

 

존경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써 받기 시작하는 거야.

 

“의미 있는 삶을 찾는 것에 대해 얘기한 것 기억하나? 적어두기도 했지만, 암송할 수 있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거기엔 돈 따위가 끼여들 틈이 없다는 걸 알겠지?”

 

내가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내 고통과 아픔만으로도 충분한 이 마당에? 물론 내 고통만으로도 충분하지. 하지만 타인에게 뭔가를 주는 것이야말로 내게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난 다시 한 번 놀랐다. 사람들이 걸어 잠근 감정을 우리 선생님은 얼마나 자연스레 끌어내는지 그 능력에 감탄했다.

 

우리 모두 똑같이 시작하지, 출생으로, 그리고 똑같이 끝나내, 죽음으로.

 

 “저번 날 멋진 이야기를 들었네.”
 모리 선생님이 말한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나는 그의 말을 기다린다.
 “그래. 넓고 넓은 바다에서 넘실대는 작은 파도에 대한 이야기야. 파도는 바람을 맞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그러다가 자기 앞에 있는 다른 파도들이 해변에 닿아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 맙소사, 이렇게 끔찍할 데가 있나. 내가 무슨 일을 당할지. 저것 좀 봐!’ 파도는 말했지.”
“그때 다른 파도가 뒤에서 왔어. 그는 이 작은 파도의 우울한 기분을 알아차리고 물었어.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짖고 있어?’”
“아까 그 작은 파도가 대답하지. ‘넌 모를 거야! 우리 모두 부서진다구! 우리 파도는 부서져 다 없어져버린단 말이야! 정말 끔찍하지않니?”
“그러자 다른 파도가 말하지. ‘아냐, 넌 잘 모르는 구나, 우리는 그냥 파도가 아냐, 우리는 바다의 일부라구.’”

 

마침내 11월 4일, 사랑하는 이들이 잠시 방을 떠났을 때―모두 부엌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혼수 상태가 시작된 후 선생님을 혼자 두고 방을 비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모리 선생님은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나는 선생님이 일부러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믿는다.
싸늘한 순간을 결코 그가 원치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마지막 숨이 끊기는 것을 누가 보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부고 전보를 받았을 때, 혹은 시체 안치소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봤을 때의 느낌이 늘 그를 따라다녔기에, 자신의 가족들에겐 그런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나는 선생님이 당신의 침대에 누워 있음을 알았으리라고, 또 자신 가까이에 책과 노트와 작은 히비스커스 화분이 있음을 알았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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